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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발전”은 여전히 유효한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상반된 국토 현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지금,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정책 슬로건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필수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인구, 자본, 일자리,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흡수하고 있는 반면, 농촌·산간·지방 중소도시는 인구 유출과 지역 기능의 약화로 인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한 지역 간 차이를 넘어 사회적 불균형, 세대 간 기회의 불공정으로까지 이어지며, 국가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이 가운데 2025년부터 본격 추진되는 국토교통부의 ‘지역개발사업’은 기존의 물리적 기반시설(SOC) 위주의 접근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삶 중심의 개발 패러다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균형발전 전략의 실질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뿐만 아니라, 교통, 주거, 일자리, 돌봄, 문화 등 생활 전반에 걸친 실질적 변화를 유도하려는 이 사업은 ‘보여주는 개발’에서 ‘살게 만드는 개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2025 지역개발사업이 기존 정책들과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국토계획·공간전략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책 전문가 및 공간 기획자의 시각에서 분석합니다. 특히 균형발전특별법 개정, 국토종합계획과의 연계, 지역 주도형 전략의 강화 등 구조적 변화 흐름 속에서 지역개발사업의 위치를 조망함으로써, 향후 대한민국 국토 전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자 합니다.

 

 

 

 

지역개발사업의 진화: 하드웨어 공급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지역개발사업은 오랜 시간 동안 기반시설 위주의 개발, 이른바 ‘하드웨어 중심’ 접근으로 추진되어 왔습니다. 도로를 새로 놓고, 광장과 공원을 조성하며, 행정복지센터나 공공건물을 신축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개발이 지역 주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다줬는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회의적이었습니다. 외형은 바뀌었지만, 체감도는 낮았고, 사후 관리 미비로 방치되거나 저활용되는 사례도 많았습니다.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이에 따라 2025년부터 본격 추진되는 지역개발사업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공급자 중심의 일률적인 인프라 조성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체감형 개발로의 전환입니다. 추진 주체도 과거의 ‘지자체 중심 공급자 모델’에서 ‘주민 수요 기반 참여형 모델’로 변화하고 있으며, 개발 대상도 획일적인 기반시설에서 벗어나 돌봄 공간, 청년 창업 지원 공간, 마을 커뮤니티 복합센터 등 생활밀착형 SOC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또한 단기·단발성 성과 위주에서 벗어나, 중장기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고려한 설계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지역계획과의 정합성, 타 정책과의 연계, 민간 파트너십 기반 조성 등을 통해 고립된 단일 사업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전략과 맞물리는 통합형 개발을 지향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개발의 형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국토개발에 대한 전략적 사고 전환을 의미합니다. 즉, 국토를 효율적으로 채우는 것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국토를 재정의하는 움직임입니다. 이는 앞으로의 지역정책과 공간계획 전반에 중대한 함의를 제공할 것으로 보입니다.

 

 

 

 

2025 지역개발사업의 유형별 전략 포인트

 

2025년 지역개발사업은 전국 17개 시·도, 113개 사업이 선정되어 본격적으로 추진됩니다. 총사업비 8,742억 원 가운데 6,120억 원이 국비로 지원되며, 지방 재정 부담을 최소화해 실행력을 높였습니다. 특히 이번 사업은 단순 인프라 조성이 아니라, 지역별 특성과 문제 해결 목표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세분화해 전략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① 일반농산어촌개발형

농촌과 어촌의 인구 유출을 막고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마을 단위의 문화·여가 공간, 직거래 장터, 귀농·귀촌 주택 등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컨대 전북 정읍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문화센터·농산물 판매장·귀농 지원 주택을 결합한 복합문화거점을 조성합니다.

 

② 도시재생지원형

쇠퇴한 도심의 활력을 회복하고, 방치된 공간을 재활용하는 전략입니다. 창업 지원 공간, 커뮤니티센터, 스마트 정류장 등 주민 생활과 직접 연결된 기능을 부여합니다. 충북 음성은 산업단지와 연계된 창업복합센터를 구축해, 제조·서비스·기술이 융합되는 거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③ 경제거점형 개발

지역 안에서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는 데 방점을 둡니다. 물류 기반 시설, 관광 거점, 농산물 유통센터 등을 통해 산업·관광·상권을 결합한 경제 생태계를 조성합니다. 경남 창녕은 우포늪 생태관광과 연계한 상생마켓을 조성해 지역 특산물 판매와 관광 수익을 동시에 창출합니다.

 

④ 지역역량강화형

물리적 개발 이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유형입니다. 주민 참여, 운영·관리 역량, 사회서비스 체계를 강화합니다. 강원 인제는 고령 인구와 교통 취약성을 고려해, 간호사·사회복지사·운전기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동형 보건소 차량을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네 가지 유형은 지역 여건·산업 구조·인구 특성을 면밀히 반영하며, 기존의 ‘일률적’ 개발 틀에서 벗어나 통합적이고 균형 잡힌 국토 발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중장기 국토 전략과의 연결 고리

 

1) 국토종합계획과의 연계

2020~2040 국토종합계획은 “사람 중심의 포용 국토”와 “자립적 지역 발전”을 양대 가치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국토 개발이 아니라, 모든 지역이 스스로 생존·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장기 청사진입니다.
2025년 지역개발사업은 이러한 청사진을 실제 공간 단위에서 구현하는 ‘현장 실행 장치’로 기능합니다. 예를 들어, 국토종합계획의 거점 지역 육성 목표는 광역권·생활권별 맞춤형 전략 수립과 연계되며, 지역경제 활성화 목표는 창업지원공간, 물류·유통센터, 관광거점 조성 등으로 구체화됩니다. 또한 삶의 질 향상 항목은 돌봄·문화복지 인프라를 생활 SOC 형태로 제공하는 사업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의 최상위 계획과 현장 사업이 일관된 전략 하에 작동함으로써, 정책의 지속성과 효율성이 높아집니다.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2) 균형발전특별법 개정과 권한 이양

2024년 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은 지방정부의 개발 기획·집행 권한을 대폭 확대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전까지 중앙정부 주도였던 지역개발은 이제 지자체가 사업을 설계·제안·운영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국가는 가이드라인 제시와 재정 지원에 집중합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권한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맞춤형 전략 수립을 가능하게 합니다. 각 지자체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기획을 통해 공모에 참여할 수 있으며, 민간과의 파트너십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균형발전의 실행 속도를 높이고, 중앙-지방 간 정책 불일치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결국, 2025년 지역개발사업은 국토종합계획의 중장기 목표를 실질화하고, 개정 균형발전특별법이 마련한 분권형 국토 관리 체계의 첫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민간 참여, 지속 가능성, 그리고 평가체계

 

2025년 지역개발사업은 과거의 ‘공공 단독 추진’에서 벗어나 민간과의 협력 구조를 핵심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원 보완이 아니라, 사업의 지속성과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우선 민간 협업 모델을 보면, 공공이 구축한 인프라를 민간이 운영·활성화하는 방식이 주를 이룹니다. 예를 들어, 공공 유통센터는 농협이나 로컬 협동조합이 운영을 맡아 지역 농산물의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합니다. 관광 기반시설은 민간 숙박·식음업체와 연계해 체험 프로그램과 지역 특화 상품 판매를 결합합니다. 창업 공간에는 사회적기업과 스타트업이 입주해 지역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청년층의 정착을 유도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단기 성과를 넘어 지역경제 자립 생태계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듭니다.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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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평가체계 역시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과거에는 ‘시설 개수’나 ‘이용률’ 같은 정량적 지표에 치중했다면, 2025년부터는 정성적 성과의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지역 전략과의 연계성(중장기 계획과의 정합성) ▲지속 가능성(사후 운영계획, 주민참여 구조) ▲경제성(고용 창출, 상권 회복 가능성) ▲공동체 기반(주민의 기획·운영 참여율) 등이 주요 평가 항목으로 포함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업 종료 이후에도 시설과 프로그램이 계속 운영되고, 지역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결국 2025년 지역개발사업은 “성과 중심”에서 “품질 중심”으로, 그리고 “사업 종료”에서 “지역 자립”으로 패러다임을 이동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제도 설계의 시사점: 공간기획 vs 기능기획의 통합

 

지역개발사업은 오랫동안 도로, 광장, 건물 등 물리적 환경을 재배치·확충하는 ‘공간기획’에 집중해 왔습니다. 도시계획가, 건축가, 엔지니어가 중심이 되어 지역의 외형을 바꾸는 방식이 주류였고, 그 성과는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시설 완공 이후 실제로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고, 주민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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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지역개발사업은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기능기획’을 본격적으로 결합하고 있습니다. 기능기획은 단순히 ‘어디에 무엇을 짓느냐’가 아니라, 그 공간이 어떤 서비스와 운영 체계를 갖추어야 지속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설계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복지 거점을 만든다면 돌봄 프로그램 운영 주체, 주민 참여 구조, 서비스 제공 주기와 방식까지 포함해 설계하는 것입니다. 이는 도시계획가나 건축가뿐 아니라 복지사, 사회혁신 전문가,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야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공간기획과 기능기획의 융합은 외형적 변화를 넘어 삶의 질 향상, 공동체 회복, 지속 가능한 운영을 목표로 합니다. 물리적 장소가 단순한 ‘건물’에서 ‘살아있는 플랫폼’으로 전환되는 순간, 개발사업은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장기적 발전 엔진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균형발전 정책은 이 두 기획의 통합을 전제로 설계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의 형태와 기능을 동시에 고려하는 전략은, 개발 이후에도 공간이 활발히 활용되고, 주민이 그 변화를 체감하며, 지역이 자생적으로 발전하는 구조를 만드는 핵심이 될 것입니다.

 

 

 

 

지역은 전략이다.

 

2025년 지역개발사업은 표면적으로는 교통, 주거, 일자리, 돌봄 등 개별 생활 영역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국가 차원의 국토 전략을 지역 단위로 세분화·현실화하는 ‘전략적 플랫폼’입니다. 다시 말해, 각 지역이 국가 발전 계획의 하위 수혜자가 아니라, 계획 수립과 실행의 공동 설계자로 자리매김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수도권 집중-지방 소멸’이라는 양극화 흐름 속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균형발전은 국가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는 인식은 더 이상 선언적 문구에 머물 수 없으며, 국토 공간 운영의 핵심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인구 감소, 산업 구조 변화, 기후위기 대응 등 복합적 변수를 고려할 때, 중앙과 지방이 동일한 수준에서 기획과 집행을 공유하는 구조 없이는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균형발전 로드맵 따라잡기: 2025 지역개발사업으로 본 국토 전략

 

2025년은 이러한 전환의 원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드웨어 중심의 일률적 공급 모델에서, 주민 수요와 지역 특성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지속형 전략 모델로의 이행은 단기 성과보다 중장기 구조 변화를 지향합니다. 나아가 각 사업이 지역경제, 공동체 회복, 환경·문화 보존까지 포괄하는 다층적 효과를 창출할 때, 진정한 의미의 균형발전이 실현됩니다.

 

결국 2025년 지역개발사업은 하나의 사업 목록이 아니라, 국토 공간 기획의 새로운 방향을 여는 첫걸음이자, 향후 10~20년을 내다보는 전략적 기획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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