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두는 어떤 맛일까?"
생두를 구매하거나 로스팅하기 전에 우리는 항상 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향미는 단순히 로스팅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두 자체의 잠재력이 어떤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 가능성을 꿰뚫어 보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 바로 커핑(Cupping)입니다.
커핑은 단순한 테이스팅이 아닙니다.
정해진 절차와 규칙, 점수 기준을 바탕으로 생두의 향과 맛을 분석하는 매우 체계적인 평가 방식입니다.
전 세계 커피 전문가들이 생두를 테스트하고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신뢰하는 도구가 바로 커핑입니다.
1️⃣ 커핑이란 무엇인가? – 향미의 잠재력을 꿰뚫는 감각적 평가 방식
커핑(Cupping)이란, 생두의 맛과 향을 분석하고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준화된 커피 테이스팅 기법입니다.
이 방식은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서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사용되며,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와 같은 기관에서 표준을 제시합니다.
왜 커핑이 필요한가?
생두는 단순히 ‘맛있다’, ‘없다’가 아니라,
- 어떤 향미를 갖고 있는지
- 산미는 어떤 종류인지
- 바디감은 무거운지, 가벼운지
- 후미(Aftertaste)는 깔끔한지, 텁텁한지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커핑은 이 모든 요소를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해주며, 생두의 품질, 특성, 결점을 평가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
- 로스터: 생두 구매 전 향미 평가
- 바리스타: 새로운 원두 이해 및 메뉴 구성
- 생두 수입사: 거래 전 품질 검수
- 커피 애호가: 취향 탐색과 원두 비교
이처럼 커핑은 산업 전반에서 필수적인 절차이며, 생두 선택의 ‘감각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2️⃣ 커핑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 표준화된 절차와 평가 요소
커핑은 단순히 커피를 마셔보는 것이 아닙니다.
명확한 단계와 조건, 용어를 기준으로 분석하고 기록하는 작업입니다.
SCA 기준에 따른 커핑 절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생두 샘플 로스팅
생두는 커핑용으로 라이트 로스팅(Agtron 기준 63±1)
로스팅 후 8~24시간 내에 커핑 진행
가능한 한 균일한 조건 유지
2. 분쇄 및 향기(Fragrance) 평가
원두를 중간 정도의 굵기로 그라인딩
갈린 분말의 향을 맡으며 ‘드라이 아로마’를 기록
꽃향기, 과일향, 견과류, 초콜릿 등 다양하게 표현
3. 물 붓기(Breaking the Crust)
93~96℃의 뜨거운 물을 일정량 붓고 4분간 우림
그 위로 뜨는 커피 찌꺼기층(Crust)을 숟가락으로 저으며 향기 평가
이때 피어나는 향은 ‘웨트 아로마’로 기록됨
4. 시음 및 감각 평가
전용 커핑 스푼을 사용하여 커피를 흡입하듯 시음
커피가 입 전체에 퍼지게 하여 산미, 단맛, 바디, 후미 등을 느낌
필요 시 여러 번 시음하며 온도 변화에 따른 향미도 기록
5. 점수 및 노트 기록
각 요소별로 6~10점 사이로 평가 (SCA 기준)
- Fragrance / Aroma
- Flavor
- Aftertaste
- Acidity
- Body
- Balance
- Sweetness
- Clean Cup
- Uniformity
- Overall
총점이 80점 이상이면 ‘스페셜티 등급’
점수 외에도, 어떤 향이 느껴졌는지, 어떤 과일을 연상시키는지 등의
개성적인 향미 노트(Tasting Notes)도 기록해 생두의 정체성을 구체화합니다.
3️⃣ 왜 커핑이 생두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가?
커핑은 단순한 테이스팅을 넘어, 생두의 가치를 판별하는 과학적이며 감각적인 수단입니다.
생두의 ‘잠재력’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
생두는 겉으로 보기에 건강하고 결점이 없어 보여도
실제 로스팅하고 추출했을 때 플레이버가 밋밋하거나, 산미가 불균형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커핑은
✅ 생두가 로스팅 후 어떤 맛을 낼 수 있는지
✅ 그 맛이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지
✅ 향미 특성이 브랜드에 적합한지
를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객관적인 비교와 선택
같은 에티오피아 워시드라도,
- 한 생두는 자스민 향이 강하고
- 다른 생두는 레몬 산미가 강조됩니다.
이처럼 같은 산지, 같은 가공 방식의 생두라도 맛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기 때문에,
커핑을 통해 직접 비교하지 않으면 섣부른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커핑 없이 생두를 고른다는 것은
마치 요리사가 재료를 맛보지 않고 요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두의 향미는 커핑을 통해서만 로스터의 언어로 변환되고,
커핑 노트는 그 자체로 브랜드 메뉴 기획의 출발점이 됩니다.
☕ 커핑은 생두를 ‘읽는 법’이다.
로스팅과 추출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커핑을 통해 생두를 읽는 능력 없이는 그 기술이 빛을 발하기 어렵습니다.
커핑은 단순히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커피를 사랑하고 향미의 차이를 즐기는 누구에게나 열린 감각의 세계입니다.
- 커피가 왜 이 맛이 나는지
- 어떤 원산지 생두가 나에게 잘 맞는지
- 앞으로 어떤 커피를 만들고 싶은지
이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단서는 커핑 안에 있습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전, 커핑으로 생두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세요.
그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한 알의 열매가 품고 있던 풍미의 드라마로 다가올 것입니다.